오는 9월, 신선한 바람이 부는 가을을 맞이하여 비디 갤러리에서는 김시현 작가의 초대 개인전을 개최한다. 보자기의 상징적 이미지를 통해 소통하는 김시현 작가는 보자기가 보이지 않는 내용물에 대한 궁금증을 이끌어내며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동적 넓이와 품을 지닌 물건이라고 말한다.
예술 언어는 문자언어나 음성언어가 표현하기 힘든 심미적이고 미묘한 인간 내부의 감성이나 사고 등을 전달하고 소통하는데 활용되어 왔다. 특별히 회화와 같은 시각예술을 살펴보면 선이나 색 혹은 명암과 같은 조형 요소 뿐만 아니라 그러한 조형요소가 만들어내는 형태나 이미지가 상징하거나 지시하는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사회적 의미나 심리적 정서까지 환기시키는 작용을 하기도 하는 것을 많은 미술작품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에 작가 자신이 지역적, 민족적으로 한국인이라는 것과 생물학적, 성적으로 여성이라는 것이 본인의 정체성을 규정하게 되는 주된 배경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주요한 검토 대상으로 상정하였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문제를 함축하는 상징적 이미지를 찾는 과정에서 보자기 혹은 보따리로 불리 울 수 있는 한국적이고 여성적인 이미지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이 보자기라는 것은 그 자체가 보관수단이자 전달수단이기에 언어에 있어서 정보의 저장수단이자 전달수단이 문자인 것처럼 보자기는 소통 그 자체를 상징하는 물체일 수 있다는 생각에서 보자기의 상징적 의미의 껍질들을 읽어나가기로 하였다. 그래서 이 이미지가 상징하는 정서 혹은 의미의 영역을 중심으로 이 상징적 이미지가 갖는 예술언어적 소통의 내용과 범위를 고찰하는 것을 주제로 하여 연구를 수행 하게 되었다.
보자기는 본래 단순한 실용도구에만 그치지 않고 종교적 염원과 바램을 위한 주술적 도구이자 예절과 격식을 갖추기 위한 의례용 도구이기도 하다. 보자기를 살펴보면 천위에 복(福)이나 수(壽)와 같은 글을 넣어 행복과 장수를 비는 주술적인 소망을 담기도 하고 십장생, 용, 봉황 등과 같은 품위와 격 그리고 멋을 위한 소재로 여러 가지 색채와 문양을 넣기도 한다. 그러므로 보자기 그 자체가 기호와 상징 그리고 색채와 장식으로 구성된 예술품이자 주술적 도구이며 예를 갖춘 특별한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살펴보면 선물을 보낼 때 선물에는 보내는 사람의 마음까지 담아 보냈던 것처럼 보자기라는 물건은 운반을 위한 수단이자 동시에 마음의 소통 도구였던 것이다.
세계적인 것을 따라 가는 것보다는 우리 고유의 것이 세계적일 수 있기에 김시현 작가는 이러한 소재로 작품의 조형언어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편리함을 추구하는 디지털 기반의 현대사회에서 옛 우리 물건의 아날로그적인 생활의 도구들이 지금은 오히려 소수화 되었지만 다른 한편 그렇게 소수화 되었기에 귀한 것이 되고 명품으로 남는 것 같기도 하다. 산업문명이 발달하면서 대량생산 체제가 되고, 1회용이 난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인간은 자연에 가해자가 되고 있는 시대이다. 손으로 직접 만들어 정성으로 빚어내던 시절의 것들은 이제 추억의 물건으로만 남게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물건들은 여전히 한국인의 감성을 자극한다. 작가의 작품 소재로 등장하는 보자기 또한 그러한 감성을 일깨우는 중요한 소재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